'타이레놀 위기'와 존슨


(서울=연합뉴스) 1982년 9월 29일 아침 미국 시카고 교외의 한 마을에서 목 통증과 콧물 등 감기 증세를 보이던 12세 소녀가 감기약을 먹고 갑자기 숨졌다. 이어서 시카고 일대에서는 며칠 새 7명이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이들 모두가 숨지기 직전 감기약 타이레놀 캡슐을 복용했고 그 캡슐에는 치명적 독극물인 청산가리가 섞여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타이레놀 제조업체 맥닐의 모기업이자 이 약품 유통을 담당하는 존슨앤드존슨에는 비상이 걸렸다. 피해자들이 복용한 타이레놀은 몇 개의 다른 공장에서 생산됐고 여러 정황상 제조 과정에서 독극물이 투입됐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판단됐다. 그러나 존슨앤드존슨 최고경영자(CEO) 제임스 버크는 기업 역사상 유례없이 신속하고 단호하고 솔직하게 대처하기로 했다.

사건의 진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도 전인 그해 9월 30일부터 존슨앤드존슨은 차례차례 필요한 조치를 단행하기 시작했다. 우선 타이레놀에 대한 광고를 전면 중단하고 언론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솔직히 알렸으며 범인 검거에 10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전국의 병원과 약국에는 급전을 보내 타이레놀을 처방하거나 판매하지 말도록 당부했다. 공장에서는 타이레놀 캡슐 제조를 중단했다. 경찰과 식품의약국(FDA) 등 관계 당국과 연락 채널을 구축해 긴밀히 협력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지역 경찰은 담당구역 구석구석을 돌면서 경찰차의 방송시설을 이용해 타이레놀 캡슐을 복용하지 말 것을 시민들에게 알렸다. 이 덕분에 독극물이 주입된 타이레놀 병이 몇 개 더 발견됐지만 사상자는 더 나오지 않았다.

1982년 미국 시카고 근교에서 독극물이 투입된 감기약 타이레놀 캡슐을 복용한 7명이 잇따라 숨졌다. 사진은 독극물이 투입된 타이레놀 캡슐과 같은 종류의 제품 [AP 자료사진]
1982년 미국 시카고 근교에서 독극물이 투입된 감기약 타이레놀 캡슐을 복용한 7명이 잇따라 숨졌다. 사진은 독극물이 투입된 타이레놀 캡슐과 같은 종류의 제품 [AP 자료사진]

그러나 존슨앤드존슨의 조치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존슨앤드존슨은 독극물에 오염된 타이레놀은 더는 없을 것으로 확신했으면서도 10월 5일 이미 전국에 팔려나간 캡슐형 타이레놀 3천100만 병을 모두 수거하고 소비자들에게는 위험성이 없는 알약 제품으로 교환해 줄 것이라고 발표했다. 리콜 대상 물량의 시가는 1억 달러가 넘었다. 정부 당국조차 이는 "과잉 조치"라는 반응을 보였으나 버크 CEO는 "소비자의 안전에 비하면 이익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면서 당초의 방침을 밀어붙였다. 

많은 사람은 이것으로 비처방 감기약 시장에서 부동의 1위였던 타이레놀이 퇴출당하는 것은 물론 100년에 이르는 존슨앤드존슨의 역사도 종언을 고하게 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봤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존슨앤드존슨의 진정성을 신뢰했다. 언론도 존슨앤드존슨의 수습대책을 높이 평가했다. 타이레놀은 이물질 투입이 불가능한 삼중 포장 용기에 담긴 알약 제품으로 2개월여 만에 시장에 복귀했고 40%에 가까웠던 시장점유율을 곧 회복했다. 타이레놀은 '시카고 독극물 사건' 이후 3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브랜드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물론 시장점유율도 옛 수준을 잃지 않고 있다. 2012년 세상을 떠난 제임스 버크 당시 CEO는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독극물 사건에 대한 존슨앤드존슨의 대처 방식은 지금까지도 위기 상황을 맞은 많은 기업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존슨앤드존슨의 사례는 웬만한 대학 경영학과의 학부생들도 알 정도의 유명한 일화가 됐지만 이를 단순히 '위기 경영의 테크닉' 차원으로 이해한다면 본질에서 한참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1886년 설립된 존슨앤드존슨은 '윤리경영'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같은 용어가 생겨나기도 한참 전인 1943년에 이미 '우리의 신조(Our Credo)'라는 헌장을 공식 채택할 정도로 윤리를 중시해온 기업이다. 고객과 종업원, 지역사회, 주주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천명한 4문단짜리 '우리의 신조'는 미국 뉴저지주 뉴브런즈윅의 존슨앤드존슨 본사는 물론 200개가 넘는 국가별·지역별 사업조직과 계열사의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게시돼 있다. 전 세계의 존슨앤드존슨 직원은 신입 오리엔테이션이나 리더십 교육 때는 반드시 가상의 사례를 통해 '우리의 신조'를 구체적인 의사결정에 어떻게 반영할지를 토의한다고 한다.

미국 뉴저지주 뉴브런즈윅 존슨앤드존슨 본사에 설치된 '우리의 신조' 석판 [존슨앤드존슨 홈페이지]
미국 뉴저지주 뉴브런즈윅 존슨앤드존슨 본사에 설치된 '우리의 신조' 석판 [존슨앤드존슨 홈페이지]

존슨앤드존슨이 언제나 윤리적이었던 것은 아닐 터이고 현안이 있을 때마다 기업의 책임을 다했다고 이야기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윤 추구 이외에도 존재 목적이 있음을 구성원들이 공감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를 일깨우는 기업은 뭔가 행동방식이 다를 것이라는 추정은 충분히 가능하다. 여러 기관의 조사에서 존슨앤드존슨이 언제나 '존경받는 기업', '일하고 싶은 기업'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 기업의 존망이 걸린 위기에 직면해서도 정직과 진정성을 인정받아 오히려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만드는 저력은 매뉴얼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다. <논설위원>

cwhyna@yna.co.kr

<추왕훈의 데자뷔> '타이레놀 위기'와 존슨앤드존슨의 신조

(서울=연합뉴스) 1982년 9월 29일 아침 미국 시카고 교외의 한 마을에서 목 통증과 콧물 등 감기 증세를 보이던 12세 소녀가 감기약을 먹고 갑자기 숨졌다. 이어서 시카고 일대에서는 며칠 새 7명이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이들 모두가 숨지기 직전 감기약 타이레놀 캡슐을 복용했고 그 캡슐에는 치명적 독극물인 청산가리가 섞여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타이레놀 제조업체 맥닐의 모기업이자 이 약품 유통을 담당하는 존슨앤드존슨에는 비상이 걸렸다. 피해자들이 복용한 타이레놀은 몇 개의 다른 공장에서 생산됐고 여러 정황상 제조 과정에서 독극물이 투입됐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판단됐다. 그러나 존슨앤드존슨 최고경영자(CEO) 제임스 버크는 기업 역사상 유례없이 신속하고 단호하고 솔직하게 대처하기로 했다.

사건의 진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도 전인 그해 9월 30일부터 존슨앤드존슨은 차례차례 필요한 조치를 단행하기 시작했다. 우선 타이레놀에 대한 광고를 전면 중단하고 언론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솔직히 알렸으며 범인 검거에 10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전국의 병원과 약국에는 급전을 보내 타이레놀을 처방하거나 판매하지 말도록 당부했다. 공장에서는 타이레놀 캡슐 제조를 중단했다. 경찰과 식품의약국(FDA) 등 관계 당국과 연락 채널을 구축해 긴밀히 협력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지역 경찰은 담당구역 구석구석을 돌면서 경찰차의 방송시설을 이용해 타이레놀 캡슐을 복용하지 말 것을 시민들에게 알렸다. 이 덕분에 독극물이 주입된 타이레놀 병이 몇 개 더 발견됐지만 사상자는 더 나오지 않았다.

1982년 미국 시카고 근교에서 독극물이 투입된 감기약 타이레놀 캡슐을 복용한 7명이 잇따라 숨졌다. 사진은 독극물이 투입된 타이레놀 캡슐과 같은 종류의 제품 [AP 자료사진]
1982년 미국 시카고 근교에서 독극물이 투입된 감기약 타이레놀 캡슐을 복용한 7명이 잇따라 숨졌다. 사진은 독극물이 투입된 타이레놀 캡슐과 같은 종류의 제품 [AP 자료사진]

그러나 존슨앤드존슨의 조치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존슨앤드존슨은 독극물에 오염된 타이레놀은 더는 없을 것으로 확신했으면서도 10월 5일 이미 전국에 팔려나간 캡슐형 타이레놀 3천100만 병을 모두 수거하고 소비자들에게는 위험성이 없는 알약 제품으로 교환해 줄 것이라고 발표했다. 리콜 대상 물량의 시가는 1억 달러가 넘었다. 정부 당국조차 이는 "과잉 조치"라는 반응을 보였으나 버크 CEO는 "소비자의 안전에 비하면 이익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면서 당초의 방침을 밀어붙였다. 

많은 사람은 이것으로 비처방 감기약 시장에서 부동의 1위였던 타이레놀이 퇴출당하는 것은 물론 100년에 이르는 존슨앤드존슨의 역사도 종언을 고하게 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봤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존슨앤드존슨의 진정성을 신뢰했다. 언론도 존슨앤드존슨의 수습대책을 높이 평가했다. 타이레놀은 이물질 투입이 불가능한 삼중 포장 용기에 담긴 알약 제품으로 2개월여 만에 시장에 복귀했고 40%에 가까웠던 시장점유율을 곧 회복했다. 타이레놀은 '시카고 독극물 사건' 이후 3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브랜드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물론 시장점유율도 옛 수준을 잃지 않고 있다. 2012년 세상을 떠난 제임스 버크 당시 CEO는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독극물 사건에 대한 존슨앤드존슨의 대처 방식은 지금까지도 위기 상황을 맞은 많은 기업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존슨앤드존슨의 사례는 웬만한 대학 경영학과의 학부생들도 알 정도의 유명한 일화가 됐지만 이를 단순히 '위기 경영의 테크닉' 차원으로 이해한다면 본질에서 한참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1886년 설립된 존슨앤드존슨은 '윤리경영'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같은 용어가 생겨나기도 한참 전인 1943년에 이미 '우리의 신조(Our Credo)'라는 헌장을 공식 채택할 정도로 윤리를 중시해온 기업이다. 고객과 종업원, 지역사회, 주주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천명한 4문단짜리 '우리의 신조'는 미국 뉴저지주 뉴브런즈윅의 존슨앤드존슨 본사는 물론 200개가 넘는 국가별·지역별 사업조직과 계열사의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게시돼 있다. 전 세계의 존슨앤드존슨 직원은 신입 오리엔테이션이나 리더십 교육 때는 반드시 가상의 사례를 통해 '우리의 신조'를 구체적인 의사결정에 어떻게 반영할지를 토의한다고 한다.

미국 뉴저지주 뉴브런즈윅 존슨앤드존슨 본사에 설치된 '우리의 신조' 석판 [존슨앤드존슨 홈페이지]
미국 뉴저지주 뉴브런즈윅 존슨앤드존슨 본사에 설치된 '우리의 신조' 석판 [존슨앤드존슨 홈페이지]

존슨앤드존슨이 언제나 윤리적이었던 것은 아닐 터이고 현안이 있을 때마다 기업의 책임을 다했다고 이야기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윤 추구 이외에도 존재 목적이 있음을 구성원들이 공감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를 일깨우는 기업은 뭔가 행동방식이 다를 것이라는 추정은 충분히 가능하다. 여러 기관의 조사에서 존슨앤드존슨이 언제나 '존경받는 기업', '일하고 싶은 기업'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 기업의 존망이 걸린 위기에 직면해서도 정직과 진정성을 인정받아 오히려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만드는 저력은 매뉴얼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다. <논설위원>

cwhyna@yna.co.kr

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160913161300022


정리 및 의견
기업의 사명과 경영 철학을 내세워 추락하던 이미지를 쇄신한 마케팅
1982년 9월 시카고에서 존슨앤존슨이 생산하던 진통제 타이레놀을 복용한 후 8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존슨앤존슨은 그 명성이 높은 의약품 회사인데, 사건의 발생은 존슨앤존슨과 상관없는 제3자가 타이레놀에 독극물을 넣어 발생된 것이 밝혀짐에도, 소비자들은 불안감에 존슨의 상품을 사지않는 불매운동으로 발생했다. 
하루아침에 존슨은 존망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존슨앤존슨은 1초에 망설임도 없이 "고객인 소비자의 안전을 최우선한다"라는 기업의 사명과 경영 철학을 통해 모든 타이레놀을 전량 회수하고, 사망한 가족의 유족들에게 최선을 다한다. 이로써 고객의 신뢰를 받은 존슨의 제품은 사건 이전보다 더많은 매출이 발생되고, 정직과 진정성을 인정받아 오히려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만들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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